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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강원도 산악 훈련, 바르셀로나 기록, 은퇴 후 남긴 것)

by race 2026. 3. 31.

얼마 전에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선수를 따돌리는 그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중계가 아니라 훈련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1992년 8월의 그 순간이 왜 지금까지도 많은 러너들에게 회자되는지, 그 이면까지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92년 8월 9일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황영조 선수의 모습
1992년 8월 9일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황영조 선수의 모습

황영조를 금메달리스트로 만든 강원도 산악 훈련

러닝을 취미로 삼으며, 시간이 나면 지금은 은퇴한 선수들의 마라토너 현역 시절 영상을 찾아보곤 합니다. 어느 날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 레이스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선수를 따돌리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게 진짜 훈련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1992년 8월 9일, 황영조는 금메달을 획득해 냅니다. 손기정 선생 이후 56년 만에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 정상에 오른 것이죠. 황영조는 대한민국 마라톤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감동은 일제강점기를 지낸 우리 국민들에게는 단순한 금메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본 후 저는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선수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황영조의 유년시절을 찾아봤습니다. 황영조는 1970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습니다. 삼척은 대한민국 강원도 태백산맥 자락에 위치한 산간 도시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일상인 지형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환경에서 뛰어놀며 자연스럽게 심폐 기능이 단련됐고, 이것이 훗날 마라토너로서의 기본기가 됐습니다. 심폐 기능이란 심장과 폐가 산소를 흡수하고 근육에 공급하는 능력으로, 장거리 달리기에서 지구력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신체 조건입니다. 오르막이 많은 지형에서 자라며 이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졌다는 점이, 태어날 때부터 마라토너의 피가 흐른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고지대 훈련과 하루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강도 높은 훈련을 병행했습니다. 고지대 훈련이란 산소 농도가 낮은 높은 고도에서 훈련함으로써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고 지구력을 향상하는 방식으로, 마라톤 선수들이 심폐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대표적인 훈련법입니다. 제가 러닝을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건, 평지만 달리는 것과 오르막을 섞어서 달리는 건 완전히 다른 훈련이라는 점입니다. 오르막을 처음 달렸을 때 심박수가 순식간에 치솟는 걸 느끼며, 황영조가 어린 시절부터 이런 지형에서 달렸다는 게 얼마나 큰 자산이었을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황영조는 약점이 될 수 있었던 환경을 오히려 최고의 무기로 만들어냈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록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은 8월 9일, 섭씨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와 높은 습도 속에서 열렸습니다. 세계 각국의 유력 선수들조차 체력 안배에 극도로 신중해야 하는 악조건이었습니다. 황영조는 초반에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선두권을 유지하는 전략적인 페이스 조절을 이어갔습니다. 페이스 조절이란 전체 경기 거리에 걸쳐 체력 소모를 균등하게 분산시키는 달리기 전략으로, 마라톤처럼 긴 거리에서는 초반 과속이 후반 체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조절 능력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저도 처음 10킬로미터 대회에 나갔을 때 초반에 너무 빠르게 달려 후반에 완전히 무너졌던 경험이 있어, 이 페이스 조절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기술인지 몸으로 압니다.
경기의 전환점은 몬주익 언덕이었습니다. 해발 약 173미터에 달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수많은 선수들의 체력을 급격히 소진시켰습니다. 하지만 강원도 산악 지형에서 수년간 단련된 황영조에게는 오히려 최적의 무대가 됐습니다. 그는 이 구간에서 스퍼트를 내며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쳤고, 마지막에 일본 선수와의 접전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스퍼트란 경기 중 특정 구간에서 속도를 급격히 높이는 전술로, 체력이 한계에 달한 후반부에 이를 성공적으로 구사하려면 평소 훈련을 통한 근지구력과 정신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걸 훈련으로 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였습니다. 몬주익 언덕이 다른 선수들에게는 고비였지만, 황영조에게는 기회였던 겁니다. 마침내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건 달리기에서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느껴져서였던 것 같습니다.

은퇴 후 남긴 것들과 아쉬움

바르셀로나 이후 황영조는 부상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오랜 혹독한 훈련으로 인해 무릎과 발목 등 하체에 누적된 피로는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데 큰 장애가 됐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목표로 재활과 훈련을 병행했지만, 바르셀로나 때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아쉽게 느낀 건, 그 혹독한 훈련이 결국 선수 생명을 단축시켰다는 점입니다. 과훈련 증후군이란 신체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강도 훈련이 반복될 때 나타나는 만성 피로, 부상, 경기력 저하 현상을 말합니다. 단기적 성과를 위해 몸의 한계를 초과하는 훈련이 지속되면 결국 장기적으로 몸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아마추어 러너로서 저도 이 부분이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회 욕심에 무리하게 훈련량을 늘렸다가 무릎이 아팠던 경험이 있고, 그때 회복보다 훈련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은퇴 이후 황영조는 후진 양성과 마라톤 저변 확대에 힘쓰며 달리기의 가치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마라톤이 엘리트 선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황영조의 금메달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영광 뒤에 숨겨진 부상과 희생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르막 훈련이 마라톤에 분명 효과적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적절한 회복과 균형이 없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황영조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이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영광뿐 아니라 그 이면의 대가도 함께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황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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