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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서윤복과 남승룡, 역사)

by race 2026. 4. 5.

금메달보다 화분이 부러웠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이 남긴 이 한마디는 나라 잃은 운동선수의 비통함을 가장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러닝을 시작하고 나서 한국 마라톤 역사를 찾아보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왼쪽부터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의 모습이다. 자료 출처: 국립체육진흥공단
왼쪽부터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의 모습이다. 자료 출처: 국립체육진흥공단

일제강점기 마라톤 영웅 손기정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세운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였습니다. 올림픽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2시간 30분을 깨뜨린 순간이었죠. 올림픽 신기록이란 해당 올림픽 대회에서 나온 최고 기록을 뜻하며, 손기정의 이 기록은 단순한 올림픽 신기록을 넘어 세계 최고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이 기록은 무려 12년간 세계 최고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손기정은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로 배고픔을 잊었다고 합니다. 1935년 메이지신궁대회에서 2시간 26분 42초라는 비공인 세계 신기록을 세웠을 때, 시상대에서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공인 세계 신기록이란 세계육상연맹의 공식 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실제 기록 자체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기록을 말합니다. 코스 공인, 계측 방식, 심판 배치 등의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빠른 기록도 공식 인증을 받지 못합니다. 애국가가 아닌 일본 국가가 울려 퍼졌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숫자로 표현되는 기록 이면에 얼마나 깊은 서사가 숨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베를린에서의 우승 후 그가 월계수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린 장면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동아일보가 이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건은 결국 신문 폐간으로 이어졌고, 손기정 본인도 사실상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손기정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섰습니다. 성화 봉송이란 올림픽 개회식 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를 여러 주자가 이어받아 개최지까지 전달하는 의식으로, 최종 주자가 성화대에 불을 점화하며 대회의 시작을 알립니다. 나라 잃은 시절 일장기를 달고 달렸던 마라토너가 반세기 후 태극기 앞에서 성화를 든 장면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서윤복과 남승룡

1947년 4월 19일, 서윤복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에 섰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이었지만, 그는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이 느꼈을 감정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서윤복의 우승 기록은 2시간 25분 39초로, 손기정이 12년간 보유했던 세계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습니다. 경기 중 관중의 개 때문에 넘어져 무릎과 팔꿈치에 상처를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2킬로미터의 험준한 오르막을 질주했습니다. 키 160센티미터, 체중 55킬로그램의 체격 조건으로 매일 전차를 따라 15킬로미터를 달리는 성실함을 갖췄던 서윤복을 손기정은 자신의 집에서 숙식시키며 훈련했습니다. 그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 메달은 2021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이란 근현대 시기에 형성된 문화유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가 공식적으로 등록하고 보호하는 유산을 뜻합니다. 단순한 스포츠 기념품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상징으로 공식 인정받은 것입니다.
남승룡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운 기록은 2시간 31분 42초였습니다. 손기정과의 차이는 불과 2분 남짓이었죠. "손기정의 금메달이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화분이 부러웠다"는 말은 당시 조선인 운동선수들의 심정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남승룡은 1932년 전일본마라톤선수권, 1933년 극동선수권, 1934년과 1935년 일본건국기념 국제마라톤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극동선수권이란 20세기 초반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참여해 육상, 수영, 야구 등 여러 종목을 겨루던 국제 스포츠 대회로, 현재의 아시안게임의 전신에 해당합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36세의 나이에 서윤복의 페이스메이커 겸 코치로 뛰며 2시간 40분 10초로 12위에 올랐습니다. 페이스메이커란 마라톤이나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목표 기록을 달성하려는 선수 옆에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함께 달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주된 경쟁자가 아닌 팀 전략의 일환으로 출전합니다. 남승룡은 2023년 대한체육회의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되며 뒤늦게 예우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이란 대한체육회가 한국 스포츠 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한 인물을 선정해 공식적으로 예우하는 제도로, 선정된 인물의 업적을 기리고 후대에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세 사람이 함께 만든 역사

손기정은 광복 후 조선마라톤보급회를 창설하고 서윤복을 발굴했습니다. 남승룡은 1947년 보스턴에서 서윤복의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뛰었죠. 세 사람은 각자의 시기에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를 넘어 일제강점기를 함께 견뎌낸 동지였습니다. 손기정이 평생 미안해했다는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승룡과 평생 같이 고생했는데 나만 대접받는 것 같아서 언제나 미안하고 큰 빚을 진 기분"이라는 그의 말은 금메달리스트의 명성 뒤에 가려진 동메달리스트를 향한 동지애를 보여줍니다. 이 한 문장이 세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승룡은 광복 후 전남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1956년 충무공정신계승 전국마라톤대회를 개최하며 지역 체육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러닝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남승룡이라는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보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여전히 손기정과 서윤복에 비해 남승룡의 서사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1947 보스턴'이라는 영화가 세 사람이 함께 보스턴으로 향했던 그해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니 한 번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이들이 남긴 기록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시간 29분, 2시간 25분, 2시간 31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스포츠 기록이 아니라 나라 잃은 시대를 두 다리로 견뎌낸 한민족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이 분들에 대해 조사하며 나라 없이 달려야 했던 그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http://www.sonkeechung.com/sonkeechung/main/contents.do?menuNo=1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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