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코스 마라톤을 2시간 안에 완주하는 게 가능하다고, 진짜로 믿으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뉴스를 봤을 때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2026년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30)가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공식 대회 최초로 '2시간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제가 10km를 50분대에 완주하는 수준이라 단순 계산만 해도 풀코스에 3시간 30분이 훌쩍 넘기에 이 기록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고지대 훈련이 만든 몸, 그리고 카본 플레이트가 바꾼 기록
사웨가 1km당 유지한 속도는 약 2분 50초입니다. 제가 전력 질주를 해도 1km를 3분 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그 이상을 42km 내내 흔들림 없이 이어갔다니.. 이론상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이 기록의 바탕에는 오랫동안 쌓인 생리학적 적응이 있습니다. 사웨를 포함한 동아프리카 선수 대부분은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리프트 밸리(Rift Valley) 고지대 출신입니다. 리프트 밸리란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에 형성된 산악 지형으로, 해발 2,000m 이상의 고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은 평생 저산소 환경에 노출되어 왔고, 그 결과 적혈구 생성이 활발해지면서 VO₂max(최대산소섭취량)가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VO₂max란 운동 중 신체가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을 뜻하며,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같은 속도로 달릴 때 심폐 부담이 덜합니다. 단순히 고지대 훈련 캠프에 몇 달 다녀오는 것과, 태어나면서부터 그 공기를 마시고 자란 것 사이의 차이는 과학 연구들이 꾸준히 지적해 온 부분입니다.
물론 고지대 환경만으로 설명이 되진 않습니다. 네팔이나 볼리비아처럼 고도가 높은 나라들도 있지만 세계 마라톤 상위권을 독점하지는 못합니다. 그만큼 환경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7년간 장거리 기록 단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입니다. 카본 플레이트란 신발 밑창 내부에 탄소 섬유 소재의 판을 삽입한 구조로, 발이 지면을 박찰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탄성으로 되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발이 앞으로 튕겨 나가는 느낌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여기에 초경량 폼 소재(PEBA 폼)를 결합하면서 착지 충격 흡수와 에너지 반환율이 동시에 개선됐고, 그 결과 엘리트 선수들의 기록이 불과 수년 사이에 수분씩 단축됐습니다.
동아프리카 선수들의 기록 독점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남자 마라톤 역대 기록 상위 20개 중 18개가 케냐·에티오피아 출신
- 여자부 역시 상위 20개 중 18개를 이 두 나라가 보유
- 지난 5차례 올림픽 800m 이상 달리기 종목 메달 대부분을 케냐·에티오피아가 석권
- 이번 런던 마라톤에서는 2위(에티오피아 요미프 케젤차, 1시간 59분 41초)도 2시간 이내 완주
이 수치들을 보고 있으면, 이건 특정 선수들의 재능이 아니라 환경적 우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아프리카 독주의 진짜 이유, 그리고 공식 2시간 이내 기록의 의미
그런데 사실 사웨가 2시간의 벽을 허문 최초는 아닙니다. 2019년 엘리우드 킵초게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이미 2시간 이내로 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사웨가 최초는 아니잖아?"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사웨한테 최초라고 하는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킵초게의 1시간 59분 40초는 비엔나에서 진행된 이벤트성 특별 대회에서 나온 기록입니다.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ics)은 이 기록을 공식 세계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육상연맹이란 마라톤을 포함한 모든 육상 경기의 공식 기록과 규정을 관할하는 국제기구로, 이 기관의 인정을 받아야만 공식 세계 기록으로 역사에 남습니다(출처: World Athletics). 킵초게의 도전에서는 복수의 전문 페이스메이커가 교대로 나서 측면에서 나란히 달리며 공기 저항을 낮춰주었고, 급수도 자전거를 통해 직접 받았습니다. 일반 대회의 조건과는 달랐기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사웨의 이번 기록은 일반 대회와 동일한 조건에서 나왔습니다. 그게 이 기록이 역사적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동아프리카 선수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세계 마라톤을 지배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고지대 환경 외에 저는 문화적, 경제적 요인이 훨씬 깊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케냐 이텐 지역은 해발 2,400m에 자리한 소도시로, 현지에서 "챔피언의 고향"으로 불립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이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면서 자란 아이들에게 마라톤은 '언젠가 해볼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가능한 꿈'이 됩니다.
여기에 경제적 동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빈민가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삶을 바꾸려 하듯,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청년들에게 마라톤은 빈곤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탈출구입니다. 이런 간절함이 주당 160km 이상의 훈련량을 버티게 합니다. 세계육상연맹 자료에 따르면 아마추어 남성 마라토너의 전 세계 평균 완주 시간은 1km당 약 6분 43초 페이스로 집계됩니다(출처: World Athletics). 제가 주당 30km도 힘에 부친다고 느끼는데, 엘리트 선수들은 그 다섯 배를 달리며 이 페이스의 두 배 속도를 유지합니다. 그 신체적·정신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해냅니다.
사웨는 이번 런던 대회 이전에 출전한 세 번의 마라톤에서 모두 우승했습니다. 2시간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우승은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갑작스러운 폭발이 아니라 차근차근 쌓인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웨의 기록을 보며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세상에는 제가 상상도 못 하는 수준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는 그들이 자라온 땅과 문화가 있다는 것. 4시간 이내 완주가 목표인 저로서는 그 세계가 먼 이야기지만, 달리는 사람으로서 이 기록 앞에서 괜히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다음번 러닝 전에 이 숫자를 한 번 더 떠올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