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던 시절, 러닝화는 20만 원짜리를 신으면서 양말은 천 원짜리를 신었습니다. 그 대가는 15km 훈련 직후 뒤꿈치와 발가락 사이에 잡힌 물집이었습니다. 러닝화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양말은 뒷전이었습니다. 양말의 중요성을 그날 처음 깨달았습니다.
소재 선택과 물집 예방
러닝 중 물집이 생기는 원인은 단순히 마찰 때문만이 아닙니다. 제가 신은 천 원짜리 양말은 면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양말이 문제가 됐던 건 면이라는 소재보다 오히려 습기였습니다. 면 소재는 땀을 흡수하는 능력은 있지만 배출이 느립니다. 달리는 동안 계속 발에 계속 땀이 나기 때문에 신발 속에서 발이 젖은 상태로 오래 있게 됩니다. 자연스레 피부가 불어 연약해졌고, 그 상태에서 반복적인 마찰이 가해져서 물집이 생겼던 것입니다.
기능성 러닝 양말은 이 문제를 흡습속건(moisture-wicking)으로 해결합니다. 흡습속건이란 땀을 피부 표면에서 빠르게 흡수한 뒤 외부로 배출해 발을 건조하게 유지하는 소재 특성을 말합니다. 면 소재는 땀을 빠르게 흡수는 하지만 배출이 힘든데, 이 단점을 보완한 거죠.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계열 합성섬유가 대표적으로 흡습속건 기능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메리노 울(Merino Wool)과 혼방한 제품도 많이 나옵니다. 메리노 울은 일반 울과 달리 섬유가 매우 가늘어 피부 자극이 적고, 온도 조절과 항균 기능이 뛰어납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발을 유지해 주는 소재로 계절과 무관하게 신을 수 있어서 활용성이 높습니다. 신어 보니 땀이 나도 끈적임 없이 유지되는 느낌이었고 찝찝한 느낌이 없어 좋았습니다. 굳이 기능성 양말을 신어야 하나? 라던 제가 신어보고 나서야 이해한 거죠.
소재는 이렇게 해결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러닝 누적 거리를 늘려갈 수록 나중에는 발가락 사이 물집 때문에 고생하게 됩니다. 제가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힐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러다가 토 삭스(toe socks)를 접했습니다. 토 삭스란 발가락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분리된 구조의 양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무좀에 걸린 사람들이 즐겨 신는다 하여 무좀 양말로 유명하죠. 토 삭스는 발가락 사이의 직접적인 피부 접촉을 차단해 마찰로 인한 물집을 예방합니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분리되어 있어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습니다. 오히려 불편한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20km를 달리고 나서도 발가락 사이가 멀쩡한 것을 보고 바로 신뢰도가 급상승했습니다. 그 후 장거리 러닝 시에는 무조건 발가락 양말을 신었고, 발가락 사이 물집을 원천봉쇄해 주니 마음 편하게 뛸 수 있었습니다.
봉제선과 구매 체크리스트
봉제선(seam) 위치도 놓치기 쉬운 포인트입니다. 봉제선이란 양말의 천을 이어 붙인 솔기 부분으로, 일반 양말은 보통 발가락 끝에 두툼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걸을 때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지만, 10,000보 이상의 반복 동작이 이루어지는 러닝에서는 그 미세한 자극이 발가락 끝에 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러닝 전용 양말이 심리스(seamless) 구조나 납작한 봉제선을 채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심리스 구조란 솔기 없이 원단을 통으로 짜는 방식입니다. 발가락과 양말 사이의 이물감이 전혀 없어 장거리 달리기에서 특히 유리합니다. 제가 구매해서 신었던 기능성 러닝 양말 대부분도 심리스 구조였습니다. 저는 봉제선의 차이를 처음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프 거리를 넘기면서부터는 꼼꼼히 따지게 됐습니다. 잘 신은 양말에서 오는 신뢰감이 러닝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러닝 양말을 고를 때 확인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흡습속건 소재 여부 (폴리에스터, 나일론, 메리노 울 혼방)
- 심리스 또는 납작한 봉제선 구조
- 발등과 아치 부위의 압박감과 지지력
- 발가락 사이 물집이 잦은 경우 토 삭스 고려
- 러닝화 착용 시 발 두께를 고려한 정확한 사이즈 선택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새 양말을 구입해서 바로 신고 장거리 훈련에 들어가는 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새 양말은 소재가 아직 발에 맞게 잡히지 않은 상태라, 5km 내외의 짧은 거리부터 차근차근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반 신발을 구매 해도 발에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발 뒤꿈치에 물집이 잡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그것도 빠르게, 발에 충격과 마찰을 주는 러닝은 어떨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세탁법과 교체 주기
좋은 양말을 골랐다고 끝이 아닙니다. 세탁을 어떻게 하느냐가 양말의 수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섬유유연제가 기능성 양말의 흡습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점이었습니다. 섬유유연제는 원단 표면에 코팅층을 형성해 촉감을 부드럽게 하는데, 이 코팅이 흡습속건 소재의 미세 기공을 막아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땀 배출이 느려지고 발이 더 오래 젖게 되는거죠. 이전까지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세탁할 때마다 섬유유연제를 함께 사용했습니다. 올바른 세탁법은 단순합니다. 세제만 사용하고 섬유유연제는 넣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는 러닝복이나 러닝 양말을 세탁할 때만큼은 섬유유연제를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컴프레션 양말(compression socks)을 사용하는 러너라면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컴프레션 양말이란 발목과 종아리에 단계적 압박을 가해 정맥 혈류를 개선하고 근육의 진동을 줄여주는 양말입니다. 이 압박 기능은 전적으로 탄성섬유의 상태에 달려 있어, 세탁과 건조 방법에 따라 수명이 크게 달라집니다. 실제로 컴프레션 의류는 잘못된 세탁으로 6개월 만에 압박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미국 스포츠의학회 ACSM). 러닝 양말 교체 주기는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가 기준이지만, 달리는 총 누적 거리와 세탁 횟수로 보는 편이 더 객관적입니다. 러닝화를 600~700km 기준으로 교체하듯, 양말도 누적 사용 후 쿠션과 탄성이 유의미하게 줄었다면 교체가 필요합니다(출처: 나이키 러닝 가이드). 발바닥 쿠션 패드 부분이 납작해졌거나, 아치 부분 압박이 느슨해졌다면 시각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러닝화에는 수십만 원을 쓰면서 양말은 싸구려를 신거나 낡은 것을 신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양말은 소모품이고, 기능이 떨어진 양말은 그냥 오래된 양말이지 더 이상 장비가 아닙니다. 저는 다음 훈련 전에 양말 서랍을 한번 열어보고 또 점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