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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84가 보여준 것 (평범함, 진정성, 새로운 도전)

by race 2026. 2. 26.

극한84 공식 포스터
극한84에서 보여주는 기안84의 진정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능을 넘어선 진정성으로 느껴진다. 출처:MBC

왜 잘 달리는 사람보다 힘겹게 완주하는 사람의 모습이 더 눈물겹게 느껴질까요? 최근 시청률 4.6%로 성황리에 종영한 러닝 예능 '극한 84'가 그 질문에 답을 줬습니다. 기안 84가 극한의 마라톤 환경에서 끝까지 도전하는 과정을 보며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봅니다.

극한 84가 보여준 평범함

극한 84는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 84가 세계 각지의 극한 마라톤 환경에서 완주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러닝 예능 프로그램으로, 최근 시청률 4.6%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영했습니다. 기안 84는 본명 김희민으로, 본업은 웹툰 작가이지만 저와 같은 러너들 사이에서는 마라톤 마니아로 더욱 유명합니다. 뉴욕 마라톤, 프랑스 메독 마라톤 등을 완주하며 달리기에 진심인 면모를 꾸준히 보여왔습니다. 처음 이 프로그램 제목을 봤을 때는 단순한 예능 기획이겠거니 싶었는데, 첫 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안 84가 출발 전부터 훈련 과정을 기록하는 방식이 여느 예능과는 달랐거든요. 혼자 산을 뛰고, 철분제를 챙기고, 노트북에 소감을 남기는 장면들이 방송을 위한 연출보다 진짜 준비처럼 보였습니다. 달리기를 진심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훈련 일지를 쓰고, 식단을 신경 쓰고, 자기 전에 코스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들 말입니다. 기안 84에게서 그게 느껴졌습니다.

기안 84가 마라톤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대단히 잘 달리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제가 이 예능을 보며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기안 84의 고군분투였습니다. 남아프리카 트레일 마라톤을 완주하는 장면에서 저도 솔직히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컷오프 직전 6시간 38분, 토하고 쓰러지면서도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그 순간이 단순한 예능을 넘어선 진짜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컷오프란 마라톤 대회에서 설정된 제한 시간을 의미하며, 이 시간 안에 완주하지 못하면 실격 처리되어 공식 기록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저도 대회에 나가면 늘 컷오프를 의식하게 되는데, 그 압박감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달려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실제로 저는 한 번 대회 후반에 페이스가 무너지면서 컷오프를 걱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공포감이 기안 84의 표정에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그 코스 자체도 가혹했습니다. 트레일 러닝이란 산길, 흙길, 자갈길 등 비포장 자연 지형을 달리는 러닝으로, 평탄한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로드 러닝보다 지면이 고르지 않아 발목과 무릎에 훨씬 큰 부담이 가해지고 체력 소모도 월등히 큽니다. 여기에 더해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길, 지옥 같은 급경사, 모래바닥 위를 7시간 안에 달려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저도 산악 구간이 포함된 대회를 뛰어본 적이 있는데, 오르막에서 이미 소진된 체력으로 내리막을 버텨야 할 때의 막막함은 일반 도심 마라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발목이 흔들리는 자갈길에서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순간, 그게 체력보다 정신력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기안 84의 모습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경사에서 수없이 포기 유혹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달리는 기안 84의 모습이 예능이 아닌 진짜 도전으로 느껴졌습니다.

진정성이 만든 도전

북극 마라톤을 앞두고 기안84가 노트북에 남긴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저 개인 스스로한테는 큰 도전"이라는 표현, 철분제를 먹고 인터벌 훈련을 하고 산을 뛰며 고민했다는 이야기에서 이 사람 진짜구나, 단순한 방송용 기획이 아니구나 라는 게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인터벌 훈련이란 고강도 달리기 구간과 저강도 회복 구간을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하는 훈련 방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심폐 지구력과 달리기 속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마라톤 준비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훈련법 중 하나입니다. 저도 대회를 준비할 때 인터벌 훈련을 넣으면 확실히 달라진다는 걸 느끼는데,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훈련인지 알기에 그 대목에서 더욱 공감이 됐습니다. 힘들다고 알려진 훈련을 방송 준비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진정성의 증거였습니다.

기안84의 도전은 본인이 원해서 스스로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진정성 있는 도전이라는 점이 저의 심금을 가장 울렸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극한 환경의 마라톤을 예능 포맷으로 소비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비현실적인 도전 욕구를 자극하거나 실제 위험성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극지 마라톤은 저체온증이나 탈수 같은 생명과 직결된 위험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런 부분이 예능의 흥미 요소로만 소비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기안 84가 보여준 진정성은 그런 우려를 넘어서는 힘이 있었고, 저 역시 그 장면들을 보며 다음 마라톤 대회를 등록하고 싶어 졌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묘한 감정 중 하나가, 남이 달리는 걸 보면서 나도 뛰고 싶어지는 그 충동입니다. 기안 84의 완주 장면은 저에게 그 충동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러닝으로 열어갈 새로운 도전

"마침표는 한번 찍을 필요가 있다"며 북극 마라톤을 준비하던 기안 84는 결국 그 극한의 도전을 완주했습니다. 북극 마라톤이란 북극권의 눈과 얼음 위를 달리는 극지 마라톤으로, 영하 20~40도의 혹한 속에서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해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마라톤 대회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인 도심 마라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됩니다. 제 경험상 마라톤은 완주 그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더 큽니다. 처음 10km 대회에 나가 완주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기록보다 기억에 남은 건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을 붙잡았던 순간이었으니까요. 기안 84가 북극의 혹한 속에서 무엇을 배웠을지, 그 장면을 보며 저도 함께 떠올리게 됐습니다. 완주 직후 그의 표정이 기쁨보다 안도에 가까웠던 것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모든 러너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그 감정을, 기안84도 영하의 바람 속에서 똑같이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러닝 크루장으로서 크루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실력자인 다른 출연진에게 배우는 걸 꺼리지 않는 모습은 단순한 예능인이 아닌 진짜 러너의 태도입니다. 러닝 크루란 함께 달리기를 즐기는 소모임으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훈련하며 서로 페이스를 맞추고 동기를 부여하는 달리기 커뮤니티를 말합니다. 혼자 달릴 때보다 훈련 완주율이 높아지고 부상 시 서로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저도 크루에서 달리기 시작한 뒤로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거리를 완주하게 됐으니, 기안84가 크루를 통해 얼마나 성장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크루에서 달리다 보면 내 페이스보다 빠른 사람 옆에서 뛰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 편으로 그게 가장 좋은 훈련이 되는데, 기안84도 권화운 옆에서 달리면서 그 자극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러닝을 시작한 뒤로 제가 예능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재밌는 프로그램으로 소비했을 텐데, 이제는 달리는 장면이 나오면 자세가 눈에 들어오고, 숨소리가 들리고, 페이스가 느껴집니다. 달려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감각을 기안84가 화면 안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달리는 사람의 완주보다 힘겹게 완주하는 사람의 모습이 더 많은 이들에게 동기를 준다는 사실, 이게 바로 기안84가 만든 러닝 열풍의 핵심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다음 도전이 또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용기를 줄지 기대됩니다.


참고: https://www.entermed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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